▲ © center, Jeong In Choul (Professor of Taekwondo Philosophy in Kukkiwon & WTA) (W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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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ist, By Jeong In Choul (Professor of Taekwondo Philosophy in Kukkiwon & WTA)
In the previous part, we explored the cause of the societal chaos in the collapse of authority. However, can we simply attribute the breakdown of this authority to individuals exercising it improperly? That would be an oversimplified conclusion. The fundamental reason for the collapse of societal norms and laws, as well as the lack of respect for authority, lies in the erosion of 'Ye' (禮), which is courtesy.
'Ye' represents beauty, desirability, and a measure of humanity. If we were to sum up the core of Confucian philosophy in one word, it would be 'In' (仁). However, this abstract concept of 'In' cannot be seen, touched, or tasted. We can only comprehend 'In' when it is manifested through 'Ye.' In other words, 'Ye' is the embodiment of 'In.' In fact, even if 'In' resides deep within one's heart, if we deeply love someone, it has already embodied 'In.' Moreover, 'Ye' should ideally encompass both internal and external aspects. If one is 'In,' it will manifest as 'Ye.' Of course, this 'Ye' should be sincere and not superficial.
The concrete expression of 'Ye' is called 'Ye's form and etiquette (禮儀凡節).' 'Ye' can be recognized when it is displayed in a specific format, hence the significance of 'Ye's etiquette (禮儀: specific form of 'Ye') when combined with 'Eui' (儀), which represents the inner aspect in Confucianism. While 'Eui' signifies inner and substantial aspects in Confucian philosophy, 'Ye' refers to the external and formal aspects. When Confucius emphasized that 'Ye' should not be limited to just one person but should be practiced for many, it underscored the social nature of 'Ye.' As we can see from this statement, 'Ye' is more valuable when it is practiced than when it is held internally. In the eighth chapter of 'The Analects of Confucius,' when examining the debate between Confucius and his disciple Zai Gong, we can see that Confucius attached importance to the formal aspect of 'Ye.' Zai Gong felt sorry for the sacrificial animals used in the ancestral rites, and he wished to abolish the practice. In response, Confucius said, “You are sparing the animals, but I am sparing 'Ye' (論語, 八佾編).” Of course, Confucius was cautioning against superficial 'Ye' and 'Li' (禮) that are devoid of 'In,' while emphasizing the importance of 'Ye' that embodies 'In.'
We can assess whether someone possesses 'In,' in other words, whether they are humane, by observing the outward manifestations of 'Ye.' If certain individuals shout loudly or smoke while walking in public places, can we say they possess 'In'? When people cut in line at the airport gate, take more than their share of food at a buffet, can we say that their behavior reflects the conduct of a decent person?
As 'Ye' is the embodiment of 'In,' the standard of assessing humanity ('In') in individuals, Confucianism places great importance on 'Ye's form and etiquette as well as laws. Becoming a better person does not come from chanting sacred slogans or meditation but from practicing 'Ye' in a proper manner. In the first part, we attributed the societal chaos to the collapse of authority. But what is the real reason for this authority's collapse? In truth, I find the fundamental reason in the breakdown of 'Ye.' For this society to correct itself, 'Ye' must be restored. And for this society to regain its health, the role of Taekwondo leaders is crucial. The Taekwondo spirit 'Hongik' recently presented in the revised textbook by Kukkiwon must be based on 'Ye.'
Even those who have never practiced Taekwondo know that it emphasizes courtesy and proper conduct. When students enter a Taekwondo dojang, they learn how to bow before learning how to tie their belts. They must show respect and courtesy toward instructors and seniors, as well as respect for rules and etiquette in both training and competitions. From the moment they enter the dojang until they leave, as long as they are wearing their doboks, regardless of age, everyone adopts a state of courtesy and etiquette.
A young child may throw a tantrum and ask for an ice cream while holding their mother's hand on the way home. That's expected due to their age. However, during the time they are in the dojang, they become the most composed, thoughtful, and courteous children. Over time, this attitude and demeanor extend to various aspects of their lives. I believe that the technical excellence and brilliance of Taekwondo are important, but the character education aspect is its great strength.
Due to the COVID-19 pandemic, I postponed reopening my dojang and have been teaching English to middle and high school students at an academy. It has been almost two years now. There was one aspect of teaching at an academy instead of a dojang that I had a hard time adapting to: the fact that students did not greet the teacher. And even when they did, they did it without lowering their heads; they just said it with their mouths. Teachers also seemed to accept this as the norm. When I asked them why they didn't greet the teacher, they explained that teaching greetings would make them seem old-fashioned or fearful of appearing that way. As the saying goes, "One can infer a lot from one instance," and students without basic attitudes like greetings lack consideration for others and self-control. Thus, I started teaching greeting etiquette to my students. As time passed, at least to me, the students began to greet me with bowed heads, and it became a habit to greet other teachers as well. Children change when they are taught. What ruins children is the distorted values of those who want to be 'cool' adults.
The complaint that 'today's children have no manners' has always been there, but now it is difficult to see a child who greets politely, behaves carefully in front of adults, and is considerate of others. Even in the presence of adults, they may raise their voices or act rudely according to their moods. How their actions affect others or how they are perceived by others no longer seems important. This is because the trend of the 21st century revolves around the 'self.' The 'self' is more important than others, and individuals take precedence over the groups they belong to. If someone thinks of others before themselves or has a sense of consideration, they may be ridiculed as immature and naive. Living in this reality, it is truly precious and astonishing to see a polite child. Amazingly, among ten such polite and well-behaved children, nine had practiced Taekwondo. I dare say that Taekwondo instructors should take pride in this. This is because they are responsible for the character and well-being of the children who will lead South Korea. I encourage all of you, parents, to stand tall and assertive. I hope that well-mannered trainees who have been educated with the right values will help restore the lost 'Ye' and make our society healthier.
“예의가 사라진 사회, 태권도 사범의 역할”
정인철 (국기원 이론교수)
전편에서는 이 사회의 어지러움의 원인을 권위의 붕괴에서 찾았었다. 그런데 이 권위가 무너진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잘못된 권위를 행사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권위가 붕괴 되었다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그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 것이다. 사회상규와 법도가 무너지고 권위가 존중받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예(禮)의 붕괴에 있다.
예는 아름다운 것이고, 바람직한 것이며, 사람다움의 지표이다. 유가철학(儒家哲學)의 핵심을 단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인(仁)이다. 그런데 이 인(仁)이라는 추상적 개념은 눈으로 볼 수도, 만질 수도, 맛을 볼 수도 없다.
우리가 인(仁)을 인지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예(禮)로 드러날 때이다. 즉, 예는 인(仁)의 구현(具現)이다. 사실, 예가 행위로 드러나기 전 마음 속에 갖고 있는 상태여도 그러하다.
내가 마음 속 깊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그 자체로 이미 내재적 인(仁)의 구현이 된 것이다. 그리고 예는 내, 외적으로 두루 갖추어진 것이 이상적이다. 인(仁)하다면 예(禮)로 드러난다. 물론 이 예(禮)는 겉치레가 아닌 전심이어야 한다.
예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예의범절(禮儀凡節)이다. 예는 일정한 형식에 의해 드러났을 때 인지될 수 있고 타의 귀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예(禮)가 의(儀)와 함께 할 때, 즉 예의(禮儀: 예의 구체적 형식)일 때 의미가 있다.
유학에서 의(義)가 내면적이고 실질적 측면을 뜻한다면, 예는 외면적이고 형식적인 측면을 의미한다. 논어에서 ‘한 사람만을 위한 예(禮)가 아니라 여러 사람을 위한 예(禮)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예(禮)의 사회성을 강조한 것이며,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예(禮)는 품고 있을 때 보다 드러날 때 더 가치있다.
논어(論語) 팔일편(八佾編)의 공자와 제자 자공 사이의 설전을 보면, 공자께서 예의 형식적 측면을 중요시 했음을 알 수 있다. 제자 자공이 초하루 제사에 희생제물로 쓰이는 양을 안타까이 여겨 그 제도를 없얘기를 원했다. 그러자 공자가 이렇게 말했다 “사야! 너는 그 양을 아끼는구나, 나는 그 예를 아끼노라.” (論語, 八佾編) 물론, 공자는 형식에만 치우친 예(허례허식(虛禮虛飾))를 경계했고, 인(仁)이 내포된 예(禮)를 강조했었다.
우리는 어떤 이가 인(仁)한지 그러하지 않은지, 즉 그가 사람다운지 아닌지의 여부를 예(禮)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보고 판단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이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떠들거나 길을 걸어가면서 담배를 피운다고 가정해 보자, 그 드러난 예의 수준을 볼 때 그들이 인(仁)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공항 게이트에서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걸 뻔히 보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새치기를 하고, 뷔페 식당에서 남들은 먹건말건 자기 접시에 음식을 전부 퍼가는 모습을 보고, 과연 이 모습이 사람다운 사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예는 인(仁)의 구현, 즉 사람다움(仁)의 판단 기준이기 때문에, 유가에서는 예의 형식과 법도를 중요시 한다. 거룩한 슬로건을 외치거나 명상을 하는 것으로 인간다워 지는 것이 아니라, 예(禮)를 적절한 형식에 따라 힘써 행함으로써 사람다운 사람, 나아가 어진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사회상규와 법도가 무너지고 권위가 존중받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예의 붕괴에서 찾는다. 생각하건데 예(禮)가 회복되어야 이 사회가 바로 잡힐 것이다. 그리고 이 사회가 다시 건강해지려면 태권도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태권도가 예(禮)를 매우 중요시하는 무도이기 때문이다.
국기원이 최근 개정된 교본에서 발표한 태권도 정신 ‘홍익(弘益)’이라는 덕목은 예(禮)가 전제되어 있어야 가능하다.
태권도를 평생 안 해본 사람도 태권도하면 ‘예의를 중시하는 무도’라는 것을 알고 있다. 태권도장에 가면 띠 매는 방법을 배우기도 전에 인사하는 법부터 배운다. 지도자와 선배에 대한 존경과 예의, 그리고 동료와 후배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하고, 품새를 할 때나 겨루기를 할 때나, 항상 예의와 법도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도장에 들어와 운동을 시작하기 전부터 집에가는 그 순간까지, 최소한 도복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나이가 많건 어리건 간에 누구나 예의범절 모드가 된다.
유치부 수련생이 엄마 손을 잡고 집에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떼를 쓸 수는 있다. 어리니까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 도장에서 운동을 하는 그 시간만큼은 하루 중 가장 차분하고 신중하고 예의바른 아이가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런 태도와 자세는 생활 전반으로 확장된다. 필자는 태권도의 기술적인 우수함이나 화려함도 훌륭하지만, 바로 이런 인성교육적 측면이 큰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코로나 팬데믹이 계기가 되어 도장을 재오픈하는 것을 잠시 미루고 학원에서 중고등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이제 거진 2년이 다 되어간다. 도장이 아닌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처음에 도무지 적응이 안 되었던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아이들이 선생에게 인사를 안 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인사를 하더라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입으로만 하곤했다.
선생들도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하루는 왜 아이들에게 인사를 안 받느냐고 물었더니 인사를 하라고 가르치는건 꼰대라서, 혹은 그렇게 보일까봐 두려워서 그런다는 것이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듯이, 인사같은 기본적 태도가 안 되어있는 학생들이 상대에 대한 배려나, 자기통제력이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맡은 반 학생들에게 인사 교육부터 시켰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이 최소한 내게는 고개숙여 인사를 했고, 그것이 습관이 되어 다른 선생님에게도 인사를 잘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가르치면 변한다. 아이들을 망치는 것은 스스로 ‘쿨한 어른’이고 싶어하는 자들의 왜곡된 가치관이다.
‘요즘 아이들 버릇없다’는 말은 항상 있어왔지만, 이제는 예쁘게 고개숙여 인사하고, 어른 앞에서 행동을 조심하는 아이를 보는 것이 힘들다. 앞에 어른이 있어도, 자기 기분에 따라 큰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거칠게 행동하기도 한다. 내가 하는 행동이 상대의 기분을 어떻게 하는지, 타인에게 보여지는 나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21세기의 트렌드는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남보다는 내가 중요하고, 내가 속한 집단보다는 내가 먼저다.
그리고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거나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면 어리숙하고 바보같다고 조롱을 받는다. 이런 현실에서 살아가다 보니, 가끔 예의바른 아이를 보면 너무 귀하고 놀랍다. 흥미롭게도, 어쩌다가 예의바르고 말과 행동이 예쁜 아이들을 보면 열명 중 아홉은 태권도를 수련했었던 아이들이었다.
나는, 감히, 태권도 지도자들이 자부심을 느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대들이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아이들의 인성과 건강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학부모에게 좀 더 당당해도 된다. 그리고 이 사회 앞에 당당하기 바란다. 바른 가치관으로 교육받은 예의바른 수련생들이 잘 자라서, 붕괴되었던 예를 회복시키고 나아가 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것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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